페르난도 곤살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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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페르난도 곤살레스는 칠레의 은퇴한 프로 테니스 선수이다. 그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남자 복식에서 금메달, 남자 단식에서 동메달을 획득했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남자 단식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곤살레스는 11번의 ATP 투어 단식 우승과 11번의 준우승, 3번의 복식 우승을 기록했다. 그는 2012년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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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 곤살레스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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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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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지 | 미국 마이애미 |
출생지 | 칠레 산티아고 |
프로 데뷔 | 1999년 |
은퇴 | 2012년 |
플레이 스타일 | 오른손 (원-핸드 백핸드) |
상금 | $8,862,276 |
단식 | |
통산 우승 | 11회 |
최고 랭킹 | 5위 (2007년 1월 29일) |
호주 오픈 최고 성적 | 준우승 (2007) |
프랑스 오픈 최고 성적 | 준결승 (2009) |
윔블던 최고 성적 | 8강 (2005) |
US 오픈 최고 성적 | 8강 (2002, 2009) |
기타 토너먼트 | 예 |
마스터스 컵 최고 성적 | 라운드 로빈 (2005, 2007) |
올림픽 최고 성적 | 준우승 (2008) |
복식 | |
통산 우승 | 3회 |
최고 랭킹 | 25위 (2005년 7월 4일) |
호주 오픈 최고 성적 | 8강 (2010) |
프랑스 오픈 최고 성적 | 준결승 (2005) |
윔블던 최고 성적 | 2라운드 (2005) |
US 오픈 최고 성적 | 8강 (2004) |
기타 토너먼트 | 예 |
올림픽 최고 성적 | 우승 (2004) |
혼합 복식 | |
통산 전적 | 3승 2패 |
통산 우승 | 0회 |
프랑스 오픈 최고 성적 | 8강 (2006) |
윔블던 최고 성적 | 2라운드 (2006) |
단체전 | |
데이비스 컵 최고 성적 | 8강 (2006, 2010) |
코치 | |
코치 기간 | 2018년– |
코칭 선수 | 엘리아스 이메르 (2018년 8월–) |
메달 | |
올림픽 | 금메달, 2004 아테네, 복식 은메달, 2008 베이징, 단식 동메달, 2004 아테네, 단식 |
2. 성장 과정
곤살레스는 4세 때 테니스와 축구의 두 가지 운동을 했다. 20대까지 아마추어 테니스 선수로 활동했던 그의 아버지는 그가 축구보다는 테니스에 더 재능이 있다고 판단, 6세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테니스를 치게 했다. 그는 가족과 함께 산티아고 동부의 라 레이나 지역으로 이주, '라 레이나 클럽'(Club La Reina)이라는 테니스 클럽에 들어가 클라우디오 곤살레스(Claudio González – 혈연관계는 없음)에게 주 3회 코치를 받았다.
1988년 곤살레스가 8세가 되었을 때, 그는 아버지와 함께 미국에서 한 달 반가량 머무르면서 트레이닝을 받고 테니스 대회에도 참가했다. 1992년에는 모든 가족이 미국으로 이주하여 4년간 머물렀다. 그의 가족들은 마이애미에 정착했는데, 곤살레스는 이곳에 있는 패트리쇼 애페이 아카데미(Patricio Apey Academy)에서 그의 테니스 기술을 더욱 다듬을 수 있었다.
주니어 시절 곤살레스는 세계 주니어 랭킹 1위까지 올랐다. 그는 1997년 US 오픈 남자 주니어 복식에 칠레의 동료 선수인 니콜라스 마수와 한 팀으로 출전하여 우승했으며, 1998년 프랑스 오픈 남자 주니어 단식(결승에서 후안 카를로스 페레로에게 승리) 및 남자 주니어 복식(베네수엘라의 호세 데 아르마스와 한 팀으로 출전)에서도 우승했다. 또 1998년에는 17세의 나이로 데이비스 컵 칠레 대표선수로 발탁되어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 참가, 단식 경기에서는 프란코 스퀼라리에게 패했으나 마지막 복식에 니콜라스 마수와 함께 출전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주니어로 활동한 마지막 해였던 1998년, 그는 퓨처스급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이 해 칠레에서 열린 세 개의 퓨처스 대회에서 우승했으며, 준결승에도 두 번 진출했다.
2. 1. 주니어 시절
곤살레스는 4세 때 테니스와 축구를 병행했다. 20대까지 아마추어 테니스 선수로 활동했던 그의 아버지는 그가 축구보다는 테니스에 더 재능이 있다고 판단, 6세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테니스를 치게 했다. 그는 가족과 함께 산티아고 동부의 라 레이나 지역으로 이주, '라 레이나 클럽'(Club La Reina)이라는 테니스 클럽에 들어가 클라우디오 곤살레스(Claudio González – 혈연관계는 없음)에게 주 3회 코치를 받았다.1988년 곤살레스가 8세가 되었을 때, 그는 아버지와 함께 미국에서 한 달 반가량 머무르면서 트레이닝을 받고 테니스 대회에도 참가했다. 1992년에는 모든 가족이 미국으로 이주하여 4년간 머물렀다. 그의 가족들은 마이애미에 정착했는데, 곤살레스는 이곳에 있는 패트리쇼 애페이 아카데미(Patricio Apey Academy)에서 그의 테니스 기술을 더욱 다듬을 수 있었다.
주니어 시절 곤살레스는 세계 주니어 랭킹 단식 4위, 복식 2위까지 올랐다. 그는 1997년 US 오픈 남자 주니어 복식에 칠레의 동료 선수인 니콜라스 마수와 한 팀으로 출전하여 우승했으며, 1998년 프랑스 오픈 남자 주니어 단식(결승에서 후안 카를로스 페레로에게 승리) 및 남자 주니어 복식(베네수엘라의 호세 데 아르마스와 한 팀으로 출전)에서도 우승했다. 또 1998년에는 17세의 나이로 데이비스 컵 칠레 대표선수로 발탁되어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 참가, 단식 경기에서는 프란코 스퀼라리에게 패했으나 마지막 복식에 니콜라스 마수와 함께 출전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주니어로 활동한 마지막 해였던 1998년, 그는 퓨처스급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이 해 칠레에서 열린 세 개의 퓨처스 대회에서 우승했으며, 준결승에도 두 번 진출했다. 산티아고 결승에서는 이탈리아의 엔조 아르토니를 꺾고 우승했다.
주니어 그랜드 슬램 단식 결과는 다음과 같다:
- 호주 오픈: 불참
- 프랑스 오픈: 우승 (1998)
- 윔블던: 3회전 (1997)
- US 오픈: 8강 (1998)
주니어 그랜드 슬램 복식 결과는 다음과 같다:
- 호주 오픈: 불참
- 프랑스 오픈: 우승 (1998)
- 윔블던: 1회전 (1997)
- US 오픈: 우승 (1997)
2. 1. 1. 주니어 그랜드 슬램 결과
3. 선수 경력
곤살레스는 4세 때 테니스와 축구 두 가지 운동을 했다. 20대까지 아마추어 테니스 선수로 활동했던 그의 아버지는 그가 축구보다는 테니스에 더 재능이 있다고 판단, 6세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테니스를 치게 했다. 그는 가족과 함께 산티아고 동부의 라 레이나 지역으로 이주, '라 레이나 클럽'(Club La Reina)이라는 테니스 클럽에 들어가 클라우디오 곤살레스(Claudio González – 혈연관계는 없음)에게 주 3회 코치를 받았다.
1988년 곤살레스가 8세가 되었을 때, 그는 아버지와 함께 미국에서 한 달 반가량 머무르면서 트레이닝을 받고 테니스 대회에도 참가했다. 1992년에는 모든 가족이 미국으로 이주하여 4년간 머물렀다. 그의 가족들은 마이애미에 정착했는데, 곤살레스는 이곳에 있는 패트리쇼 애페이 아카데미(Patricio Apey Academy)에서 그의 테니스 기술을 더욱 다듬을 수 있었다.
주니어 시절 곤살레스는 세계 주니어 랭킹 1위까지 올랐다. 그는 1997년 US 오픈 남자 주니어 복식에 칠레의 동료 선수인 니콜라스 마수와 한 팀으로 출전하여 우승했으며, 1998년 프랑스 오픈 남자 주니어 단식(결승에서 후안 카를로스 페레로에게 승리) 및 남자 주니어 복식(베네수엘라의 호세 드 아르마스와 한 팀으로 출전)에서도 우승했다. 또 1998년에는 17세의 나이로 데이비스 컵 칠레 대표선수로 발탁되어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 참가, 단식 경기에서는 프란코 스퀼라리에게 패했으나 마지막 복식에 니콜라스 마수와 함께 출전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주니어로 활동한 마지막 해였던 1998년, 그는 퓨처스급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이 해 칠레에서 열린 세 개의 퓨처스 대회에서 우승했으며, 준결승에도 두 번 진출했다.
=== 1999년: 프로 전향 ===
곤살레스는 1999년에 프로 선수로 데뷔했다. 그 해 초, 그는 주로 퓨처스 레벨에서 활동했다. 그는 에든버러에서 첫 챌린저 8강에 진출했고, 워싱턴에서 첫 ATP 토너먼트에 출전하여 1라운드에서 이반 류비치치를 꺾었지만, 마르크 로세에게 패했다.
=== 2000년: 투어 첫 우승 ===
곤살레스는 2000년 5월,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열린 U.S. Men's Clay Court Championships 결승에서 니콜라스 마수를 꺾고 첫 ATP 투어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는 하이메 피욜이 1982년 이타파리카 결승에서 리카르도 아쿠냐를 꺾은 이후 최초의 칠레 선수 간의 ATP 결승전이었다. 이 해에 순조롭게 랭킹을 올려 135위로 마쳤다.
=== 2002년: US 오픈 8강 ===
2002년 2월, 곤살레스는 비냐 델 마르에서 니콜라스 라펜티를 꺾고 통산 두 번째 ATP 타이틀을 획득했다. 그해 말, 그는 이탈리아 팔레르모에서 세 번째 타이틀을 획득했고, 신시내티 마스터스에서 준결승에 진출 (시드 선수인 팀 헨만과 앤디 로딕을 꺾음)했으며, US 오픈에서 8강에 진출했다. 9월에는 전 세계 랭킹 1위였던 마르셀로 리오스를 제치고 칠레 선수 중 단식 랭킹 1위에 올랐으며, ATP 투어에서 가장 발전한 선수 중 한 명으로, ATP 단식 랭킹에서 123계단이나 상승했다.
US 오픈 8강에서는 쉥크 스칼켄에게 7-6, 3-6, 3-6, 7-6, 6-7의 풀 세트 접전 끝에 패했지만, 세계 랭킹 18위로 한 해를 마무리하며 비약적인 성장을 보여주었다.
=== 2003년: 프랑스 오픈 8강 ===
곤살레스는 2003년 5월 함부르크와 프랑스 오픈에서 8강에 진출했다. 그 사이, 그는 칠레를 위해 월드 팀 컵에서 우승했으며, 모든 단식 및 복식 경기에서 승리했다. 2003년 프랑스 오픈 8강에서 주니어 시절부터 라이벌이었던 후안 카를로스 페레로에게 1-6, 6-3, 1-6, 7-5, 4-6으로 패했다. 그해 말, 그는 워싱턴과 메츠에서 결승에 진출했고 슈투트가르트에서 준결승에 진출했다. 복식에서는 파트너 토미 로브레도와 함께 마이애미에서 준결승에 진출했다. 이 해에는 우승이 없었고, 35위로 시즌을 마쳤다.
===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 동메달 획득 ===
곤살레스는 2004년 2월, 비냐 델 마르에서 구스타보 쿠에르텐을 꺾고 타이틀을 방어했다. 또한 칠레와 함께 월드 팀 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8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남자 복식에서 니콜라스 마수와 함께 독일의 니콜라스 키퍼/라이너 슈틀러 조를 6-2, 4-6, 3-6, 7-67-4, 6-4로 꺾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특히 복식 결승 4세트 타이브레이크에서 4개의 매치 포인트를 세이브하며 극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남자 단식에서는 테일러 덴트를 6-4, 2-6, 16-14로 이기고 동메달을 획득, 칠레의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곤살레스는 동메달 결정전과 복식 결승을 같은 날 치렀으며, 두 경기 모두에서 매치 포인트를 세이브하는 저력을 보였다. 2004년에는 23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 2005년: 윔블던 8강 ===
페르난도 곤살레스는 2005년 오클랜드에서 우승하며 시즌을 시작했는데, 이는 그의 첫 번째 하드 코트 타이틀이었다. 4월에는 발렌시아에서 마르틴 로드리게스와 함께 복식에서 우승했다. 6월 윔블던에서 8강에 진출했으며, 7월에는 아메르스포르트에서 ATP 토너먼트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바젤에서 실내 카펫 단식 타이틀을 획득하고 아구스틴 카예리와 함께 복식 타이틀을 획득하며 다양한 코트에서의 능력을 입증했다.
윔블던에서는 처음으로 준준결승에 진출했지만 로저 페더러에게 패했다. 프랑스 오픈 남자 복식에서는 니콜라스 마수와 함께 준결승에 진출했다. 2005년, 곤살레스는 마스터스 컵에 예비 선수로 참가, 안드레 애거시의 기권으로 선수로 뛰게 되었다. 마리아노 푸에르타를 꺾고 마스터스 경기에서 승리한 최초의 칠레 선수가 되었으나, 가스톤 가우디오에게 패하며 준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 2005년도를 11위로 마감했다.
=== 2006년 ===
4월, 곤살레스는 리오스와 마수 다음으로 칠레 선수 중 세 번째로 남자 단식 랭킹 10위 안에 진입했다. 5월에는 오라시오 데 라 페냐 코치와 결별한 직후 몬테카를로 마스터스에서 8강에 진출하며 세계 랭킹 10위에 올랐고, 이후 래리 스테판키를 새 코치로 맞이했다. 10월에는 마드리드에서 생애 첫 마스터스 시리즈 단식 결승에 진출했으나, 로저 페더러에게 패했다. 그는 연말 랭킹 10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 2007년: 호주 오픈 준우승, 세계 랭킹 5위 ===
곤살레스는 2007년 호주 오픈 단식 결승에 진출하여 4대 그랜드 슬램 토너먼트 모두에서 8강에 진출한 최초의 칠레 선수가 되었다. 결승에 오르는 과정에서 그는 예브게니 코롤레프,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 레이튼 휴이트, 제임스 블레이크, 세계 랭킹 2위 라파엘 나달, 토미 하스를 꺾었다. 그는 결승에서 세계 랭킹 1위 로저 페더러에게 패했다.
결과 | Year | 선수권 대회 | Surface | 상대 선수 | 점수 |
---|---|---|---|---|---|
패 | 2007 | 오스트레일리아 오픈 | 하드 | 로저 페더러 | 6–7(2–7), 4–6, 4–6 |
2007년 호주 오픈에서 곤살레스는 생애 첫 메이저 대회 결승에 진출했다. 3회전에서 레이턴 휴이트, 4회전에서 제임스 블레이크, 8강에서 라파엘 나달, 준결승에서 토미 하스와 같은 강호들을 연파하며 쾌진격을 보였다. 결승에서는 과거 9전 전패를 기록했던 로저 페더러에게 6-7, 4-6, 4-6으로 패하며 우승을 놓쳤지만, 칠레 남자 테니스 선수가 메이저 대회 단식 결승에 진출한 것은 1998년 호주 오픈 준우승자 마르셀로 리오스 이후 9년 만이었다. 1월 29일, 그는 5위로 도약하여 개인 최고 단식 랭킹을 기록했으며, 4위와 불과 5점 차였다. 5월에는 로마 마스터스 결승에 진출한 최초의 칠레 선수가 되었다. US 오픈에서 곤살레스는 5세트 접전 끝에 테이무라즈 가바슈빌리에게 패했다. 7월부터 8월까지, 곤살레스는 5연패를 기록했고, 9월 베이징에서 열린 차이나 오픈에서 우승하며 연패를 끊었다. 11월, 그는 테니스 마스터스 컵에 진출하여 첫 경기에서 페더러를 꺾는 이변을 연출했다. 이후 그는 앤디 로딕과 니콜라이 다비덴코에게 패하며 조 최하위로 대회를 마쳤다. 그는 시즌을 7위로 마감하며, 당시까지 개인 최고 연말 랭킹을 기록했다. 연말 최종전인 테니스 마스터스 컵에서는 라운드 로빈에서 10전 전패를 기록했던 로저 페더러에게 처음으로 승리했다.
===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은메달 획득 ===
2008년 1월 호주 오픈에서 곤살레스는 전년도 포인트를 방어하지 못해 ATP 싱글 랭킹 7위에서 24위로 하락했다.[2] 하지만 비냐 델 마르에서 우승하며 16위로 올라섰고, 5월에는 BMW 오픈에서 통산 10번째 ATP 타이틀을 획득했다.[2] 같은 해 프랑스 오픈 8강에 진출했으나, 로저 페더러에게 패했다.[2]
8월에는 베이징 올림픽에 칠레 대표로 출전, 개회식에서 칠레 선수단의 기수를 맡았다.[2] 테니스 남자 단식 결승에 진출, 라파엘 나달에게 3-6, 6-7, 3-6으로 패하여 은메달을 획득했다.[2]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이어 두 대회 연속 남자 단식 메달이었다.[2] 복식에서는 니콜라스 마수와 함께 출전했으나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2]
9월 US 오픈에서는 4라운드에서 앤디 로딕에게 패했다.[2] 그는 시즌을 15위로 마감했다.[2] 11월, 곤살레스의 코치였던 스테판키는 로딕의 코치 제안을 받고 곤살레스의 코치직을 그만두었다.[2] 12월 12일, 곤살레스는 마르틴 로드리게스를 2009년 풀타임 코치로 고용했다고 발표했다.[3][4]
=== 2009년: 프랑스 오픈 4강 ===
2009년 클레이 코트 시즌 초반, 곤살레스는 바르셀로나와 로마에서 준결승에 진출했다. 그러나 로마에서 사인회를 하던 중 발목을 접질려 뮌헨과 마드리드에서 기권해야 했다. 프랑스 오픈에서는 8강에서 3번 시드 앤디 머레이를 꺾고 처음으로 준결승에 진출했다. 준결승에서는 이전에 1번 시드 라파엘 나달과 니콜라이 다비덴코를 꺾었던 로빈 소더링을 만났다. 2009년 프랑스 오픈 준결승에서 곤살레스는 4–1로 앞서나가며 5세트에서 승리까지 단 두 게임만을 남겨두었지만, 결국 3-6, 5-7, 7-5, 6-4, 4-6으로 패배했다.
=== 2010년 ===
곤살레스는 호주 오픈에서 올리비에 로쿠스, 마르셀 일한, 예브게니 코롤레프를 꺾었지만, 4라운드에서 앤디 로딕에게 3–6, 6–3, 6–4, 5–7, 2–6으로 패했다. 경기 중 로딕의 포핸드 위너가 아웃으로 선언되면서 4세트에 논쟁의 여지가 있는 세트 포인트가 발생했는데, 곤살레스는 자신이 적절한 위치에 있었고, 만약 공이 인으로 선언되었다면 플레이를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믿었기에 해당 포인트는 재경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후 모비스타 오픈에 참가하여 준결승까지 진출했지만, 토마스 벨루치에게 3세트 만에 패했다. 아비에르토 멕시카노 텔셀 준결승에서는 다비드 페레르에게 패했다. 그는 칠레 지진 피해 지역으로 가기 위해 인디언 웰스 마스터스 1000 대회 참가를 포기했다.
3월 초, 곤살레스는 데이비스 컵에서 이스라엘을 꺾고 칠레를 8강에 진출시켰다. 마이애미에서 열린 ATP 투어 마스터스 1000 4라운드에서 로빈 소더링에게 패했다. 그는 앤디 로딕, 짐 쿠리어, 구스타보 쿠에르텐과 함께 칠레 지진 피해자를 위한 자선 행사 '챔피언스 포 칠레'를 개최했다.
클레이 시즌 동안 곤살레스는 휴스턴에서 8강에 진출했고, 롤랑 가로스에서는 2라운드에서 패했다. 무릎 부상으로 거의 3개월 동안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뉴헤이븐에서 복귀하여 2라운드에서 라덱 스테파넥에게 패했고, US 오픈에서는 이반 도디그와의 1라운드 경기에서 기권했다. 9월 21일, 곤살레스는 오른쪽 엉덩이와 오른쪽 무릎 수술을 받을 것이며, 8~9개월 동안 경기에 출전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발표했다.
=== 2011년 ===
곤살레스는 윔블던 선수권 대회 1라운드에서 알렉산드르 돌고폴로프를 꺾고 3라운드에 진출했지만, 조-윌프리드 송가에게 패했다.
=== 2012년: 은퇴 ===
2012년 2월 9일, 곤살레스는 마이애미 마스터스 이후 프로 테니스에서 은퇴할 것이라고 발표했다.[6] 그는 2012년 3월 21일 마이애미에서 마지막 프로 경기를 치렀으며, 1라운드에서 니콜라스 마위에게 세트 스코어 1-2로 패했다.[7] 곤살레스는 2012년소니 에릭슨 오픈 1회전에서 니콜라 마위에게 5-7, 6-4, 6-7(3)으로 패한 경기를 마지막으로 31세의 나이로 현역에서 은퇴했다.[12]
3. 1. 1999년: 프로 전향
곤살레스는 1999년에 프로 선수로 데뷔했다. 그 해 초, 그는 주로 퓨처스 레벨에서 활동했다. 그는 에든버러에서 첫 챌린저 8강에 진출했고, 워싱턴에서 첫 ATP 토너먼트에 출전하여 1라운드에서 이반 류비치치를 꺾었지만, 마르크 로세에게 패했다.3. 2. 2000년: 투어 첫 우승
곤살레스는 2000년 5월,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열린 U.S. Men's Clay Court Championships 결승에서 니콜라스 마수를 꺾고 첫 ATP 투어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는 하이메 피욜이 1982년 이타파리카 결승에서 리카르도 아쿠냐를 꺾은 이후 최초의 칠레 선수 간의 ATP 결승전이었다. 이 해에 순조롭게 랭킹을 올려 135위로 마쳤다.3. 3. 2002년: US 오픈 8강
2002년 2월, 곤살레스는 비냐 델 마르에서 니콜라스 라펜티를 꺾고 통산 두 번째 ATP 타이틀을 획득했다. 그해 말, 그는 이탈리아 팔레르모에서 세 번째 타이틀을 획득했고, 신시내티 마스터스에서 준결승에 진출 (시드 선수인 팀 헨만과 앤디 로딕을 꺾음)했으며, US 오픈에서 8강에 진출했다. 9월에는 전 세계 랭킹 1위였던 마르셀로 리오스를 제치고 칠레 선수 중 단식 랭킹 1위에 올랐으며, ATP 투어에서 가장 발전한 선수 중 한 명으로, ATP 단식 랭킹에서 123계단이나 상승했다.US 오픈 8강에서는 쉥크 스칼켄에게 7-6, 3-6, 3-6, 7-6, 6-7의 풀 세트 접전 끝에 패했지만, 세계 랭킹 18위로 한 해를 마무리하며 비약적인 성장을 보여주었다.
3. 4. 2003년: 프랑스 오픈 8강
곤살레스는 2003년 5월 함부르크와 프랑스 오픈에서 8강에 진출했다. 그 사이, 그는 칠레를 위해 월드 팀 컵에서 우승했으며, 모든 단식 및 복식 경기에서 승리했다. 2003년 프랑스 오픈 8강에서 주니어 시절부터 라이벌이었던 후안 카를로스 페레로에게 1-6, 6-3, 1-6, 7-5, 4-6으로 패했다. 그해 말, 그는 워싱턴과 메츠에서 결승에 진출했고 슈투트가르트에서 준결승에 진출했다. 복식에서는 파트너 토미 로브레도와 함께 마이애미에서 준결승에 진출했다. 이 해에는 우승이 없었고, 35위로 시즌을 마쳤다.3. 5.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 동메달 획득
곤살레스는 2004년 2월, 비냐 델 마르에서 구스타보 쿠에르텐을 꺾고 타이틀을 방어했다. 또한 칠레와 함께 월드 팀 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8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남자 복식에서 니콜라스 마수와 함께 독일의 니콜라스 키퍼/라이너 슈틀러 조를 6-2, 4-6, 3-6, 7-67-4, 6-4로 꺾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특히 복식 결승 4세트 타이브레이크에서 4개의 매치 포인트를 세이브하며 극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남자 단식에서는 테일러 덴트를 6-4, 2-6, 16-14로 이기고 동메달을 획득, 칠레의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곤살레스는 동메달 결정전과 복식 결승을 같은 날 치렀으며, 두 경기 모두에서 매치 포인트를 세이브하는 저력을 보였다. 2004년에는 23위로 시즌을 마감했다.3. 6. 2005년: 윔블던 8강
페르난도 곤살레스는 2005년 오클랜드에서 우승하며 시즌을 시작했는데, 이는 그의 첫 번째 하드 코트 타이틀이었다. 4월에는 발렌시아에서 마르틴 로드리게스와 함께 복식에서 우승했다. 6월 윔블던에서 8강에 진출했으며, 7월에는 아메르스포르트에서 ATP 토너먼트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바젤에서 실내 카펫 단식 타이틀을 획득하고 아구스틴 카예리와 함께 복식 타이틀을 획득하며 다양한 코트에서의 능력을 입증했다.윔블던에서는 처음으로 준준결승에 진출했지만 로저 페더러에게 패했다. 프랑스 오픈 남자 복식에서는 니콜라스 마수와 함께 준결승에 진출했다. 2005년, 곤살레스는 마스터스 컵에 예비 선수로 참가, 안드레 애거시의 기권으로 선수로 뛰게 되었다. 마리아노 푸에르타를 꺾고 마스터스 경기에서 승리한 최초의 칠레 선수가 되었으나, 가스톤 가우디오에게 패하며 준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 2005년도를 11위로 마감했다.
3. 7. 2006년
곤살레스는 4세 때 테니스와 축구를 했으며, 아버지의 권유로 6세 때부터 테니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는 가족과 함께 라 레이나 지역으로 이주하여 '라 레이나 클럽'에서 클라우디오 곤살레스에게 코치를 받았다. 1988년에는 미국에서 트레이닝을 받았고, 1992년에는 가족 전체가 미국으로 이주하여 마이애미의 패트리쇼 애페이 아카데미에서 테니스 기술을 연마했다.주니어 시절 세계 랭킹 1위까지 올랐던 그는 1997년 US 오픈 남자 주니어 복식에서 니콜라스 마수와 함께 우승했고, 1998년 프랑스 오픈 남자 주니어 단식과 복식에서 모두 우승했다. 1998년에는 데이비스 컵 칠레 대표선수로 발탁되어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 참가했다. 1998년 칠레에서 열린 세 개의 퓨처스 대회에서 우승하고 준결승에도 두 번 진출하는 등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4월, 곤살레스는 리오스와 마수 다음으로 칠레 선수 중 세 번째로 남자 단식 랭킹 10위 안에 진입했다. 5월에는 오라시오 데 라 페냐 코치와 결별한 직후 몬테카를로 마스터스에서 8강에 진출하며 세계 랭킹 10위에 올랐고, 이후 래리 스테판키를 새 코치로 맞이했다. 10월에는 마드리드에서 생애 첫 마스터스 시리즈 단식 결승에 진출했으나, 로저 페더러에게 패했다. 그는 연말 랭킹 10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3. 8. 2007년: 호주 오픈 준우승, 세계 랭킹 5위
곤살레스는 2007년 호주 오픈 단식 결승에 진출하여 4대 그랜드 슬램 토너먼트 모두에서 8강에 진출한 최초의 칠레 선수가 되었다. 결승에 오르는 과정에서 그는 예브게니 코롤레프,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 레이튼 휴이트, 제임스 블레이크, 세계 랭킹 2위 라파엘 나달, 토미 하스를 꺾었다. 그는 결승에서 세계 랭킹 1위 로저 페더러에게 패했다.결과 | Year | 선수권 대회 | Surface | 상대 선수 | 점수 |
---|---|---|---|---|---|
패 | 2007 | 오스트레일리아 오픈 | 하드 | 로저 페더러 | 6–7(2–7), 4–6, 4–6 |
2007년 호주 오픈에서 곤살레스는 생애 첫 메이저 대회 결승에 진출했다. 3회전에서 레이턴 휴이트, 4회전에서 제임스 블레이크, 8강에서 라파엘 나달, 준결승에서 토미 하스와 같은 강호들을 연파하며 쾌진격을 보였다. 결승에서는 과거 9전 전패를 기록했던 로저 페더러에게 6-7, 4-6, 4-6으로 패하며 우승을 놓쳤지만, 칠레 남자 테니스 선수가 메이저 대회 단식 결승에 진출한 것은 1998년 호주 오픈 준우승자 마르셀로 리오스 이후 9년 만이었다. 1월 29일, 그는 5위로 도약하여 개인 최고 단식 랭킹을 기록했으며, 4위와 불과 5점 차였다. 5월에는 로마 마스터스 결승에 진출한 최초의 칠레 선수가 되었다. US 오픈에서 곤살레스는 5세트 접전 끝에 테이무라즈 가바슈빌리에게 패했다. 7월부터 8월까지, 곤살레스는 5연패를 기록했고, 9월 베이징에서 열린 차이나 오픈에서 우승하며 연패를 끊었다. 11월, 그는 테니스 마스터스 컵에 진출하여 첫 경기에서 페더러를 꺾는 이변을 연출했다. 이후 그는 앤디 로딕과 니콜라이 다비덴코에게 패하며 조 최하위로 대회를 마쳤다. 그는 시즌을 7위로 마감하며, 당시까지 개인 최고 연말 랭킹을 기록했다. 이 해에는 우승은 한 대회에 그쳤지만, 전적은 좋았다. 연말 최종전인 테니스 마스터스 컵에서는 라운드 로빈에서 10전 전패를 기록했던 로저 페더러에게 처음으로 승리했으며, 2007년도는 7위로 마쳤다.
3. 9.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은메달 획득
1988년 곤살레스는 8세 때 아버지와 함께 미국에서 한 달 반가량 트레이닝을 받고 테니스 대회에 참가했다. 1992년에는 온 가족이 미국으로 이주하여 4년간 머물렀다. 그의 가족은 마이애미에 정착했고, 곤살레스는 패트리쇼 애페이 아카데미(Patricio Apey Academy)에서 테니스 기술을 연마했다. 주니어 시절 곤살레스는 세계 주니어 랭킹 1위까지 올랐으며, 1997년 US 오픈 남자 주니어 복식에서 니콜라스 마수와 함께 우승했다. 1998년 프랑스 오픈 남자 주니어 단식 및 남자 주니어 복식(호세 드 아르마스와 한 팀)에서 우승했다. 1998년에는 데이비스 컵 칠레 대표선수로 발탁되어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 참가했다.2008년 1월 호주 오픈에서 곤살레스는 전년도 포인트를 방어하지 못해 ATP 싱글 랭킹 7위에서 24위로 하락했다.[2] 하지만 비냐 델 마르에서 우승하며 16위로 올라섰고, 5월에는 BMW 오픈에서 통산 10번째 ATP 타이틀을 획득했다.[2] 같은 해 프랑스 오픈 8강에 진출했으나, 로저 페더러에게 패했다.[2]
8월에는 베이징 올림픽에 칠레 대표로 출전, 개회식에서 칠레 선수단의 기수를 맡았다.[2] 테니스 남자 단식 결승에 진출, 라파엘 나달에게 3-6, 6-7, 3-6으로 패하여 은메달을 획득했다.[2]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이어 두 대회 연속 남자 단식 메달이었다.[2] 복식에서는 니콜라스 마수와 함께 출전했으나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2]
9월 US 오픈에서는 4라운드에서 앤디 로딕에게 패했다.[2] 그는 시즌을 15위로 마감했다.[2] 11월, 곤살레스의 코치였던 스테판키는 로딕의 코치 제안을 받고 곤살레스의 코치직을 그만두었다.[2] 12월 12일, 곤살레스는 마르틴 로드리게스를 2009년 풀타임 코치로 고용했다고 발표했다.[3][4]
3. 10. 2009년: 프랑스 오픈 4강
2009년 클레이 코트 시즌 초반, 곤살레스는 바르셀로나와 로마에서 준결승에 진출했다. 그러나 로마에서 사인회를 하던 중 발목을 접질려 뮌헨과 마드리드에서 기권해야 했다. 프랑스 오픈에서는 8강에서 3번 시드 앤디 머레이를 꺾고 처음으로 준결승에 진출했다. 준결승에서는 이전에 1번 시드 라파엘 나달과 니콜라이 다비덴코를 꺾었던 로빈 소더링을 만났다. 2009년 프랑스 오픈 준결승에서 곤살레스는 4–1로 앞서나가며 5세트에서 승리까지 단 두 게임만을 남겨두었지만, 결국 3-6, 5-7, 7-5, 6-4, 4-6으로 패배했다.3. 11. 2010년
곤살레스는 호주 오픈에서 올리비에 로쿠스, 마르셀 일한, 예브게니 코롤레프를 꺾었지만, 4라운드에서 앤디 로딕에게 3–6, 6–3, 6–4, 5–7, 2–6으로 패했다. 경기 중 로딕의 포핸드 위너가 아웃으로 선언되면서 4세트에 논쟁의 여지가 있는 세트 포인트가 발생했는데, 곤살레스는 자신이 적절한 위치에 있었고, 만약 공이 인으로 선언되었다면 플레이를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믿었기에 해당 포인트는 재경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이후 모비스타 오픈에 참가하여 준결승까지 진출했지만, 토마스 벨루치에게 3세트 만에 패했다. 아비에르토 멕시카노 텔셀 준결승에서는 다비드 페레르에게 패했다. 그는 칠레 지진 피해 지역으로 가기 위해 인디언 웰스 마스터스 1000 대회 참가를 포기했다.
3월 초, 곤살레스는 데이비스 컵에서 이스라엘을 꺾고 칠레를 8강에 진출시켰다. 마이애미에서 열린 ATP 투어 마스터스 1000 4라운드에서 로빈 소더링에게 패했다. 그는 앤디 로딕, 짐 쿠리어, 구스타보 쿠에르텐과 함께 칠레 지진 피해자를 위한 자선 행사 '챔피언스 포 칠레'를 개최했다.
클레이 시즌 동안 곤살레스는 휴스턴에서 8강에 진출했고, 롤랑 가로스에서는 2라운드에서 패했다. 무릎 부상으로 거의 3개월 동안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뉴헤이븐에서 복귀하여 2라운드에서 라덱 스테파넥에게 패했고, US 오픈에서는 이반 도디그와의 1라운드 경기에서 기권했다. 9월 21일, 곤살레스는 오른쪽 엉덩이와 오른쪽 무릎 수술을 받을 것이며, 8~9개월 동안 경기에 출전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발표했다.
3. 12. 2011년
곤살레스는 4세 때 테니스와 축구를 시작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축구보다 테니스에 더 재능이 있다고 판단, 6세 때부터 테니스를 치게 했다. 그는 가족과 함께 라 레이나로 이주하여 테니스 클럽에서 코치를 받았다. 1988년에는 미국에서 트레이닝을 받고 테니스 대회에 참가했으며, 1992년에는 가족 전체가 미국으로 이주하여 마이애미에 정착, 테니스 기술을 연마했다.주니어 시절 곤살레스는 세계 주니어 랭킹 1위까지 올랐으며, 1997년 US 오픈 남자 주니어 복식에서 니콜라스 마수와 함께 우승했다. 1998년 프랑스 오픈 남자 주니어 단식 및 남자 주니어 복식(호세 드 아르마스와 한 팀)에서 우승했다. 같은 해 데이비스 컵 칠레 대표선수로 발탁되어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 참가했다. 1998년에는 칠레에서 열린 세 개의 퓨처스급 대회에서 우승하고 준결승에도 두 번 진출했다.
곤살레스는 윔블던 선수권 대회 1라운드에서 알렉산드르 돌고폴로프를 꺾고 3라운드에 진출했지만, 조-윌프리드 송가에게 패했다.
3. 13. 2012년: 은퇴
2012년 2월 9일, 곤살레스는 마이애미 마스터스 이후 프로 테니스에서 은퇴할 것이라고 발표했다.[6] 그는 2012년 3월 21일 마이애미에서 마지막 프로 경기를 치렀으며, 1라운드에서 니콜라스 마위에게 세트 스코어 1-2로 패했다.[7] 곤살레스는 2012년소니 에릭슨 오픈 1회전에서 니콜라 마위에게 5-7, 6-4, 6-7(3)으로 패한 경기를 마지막으로 31세의 나이로 현역에서 은퇴했다.[12]4. 올림픽 메달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칠레 대표로 선출되어 니콜라스 마수와 조를 이룬 남자 복식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결승 상대는 독일의 니콜라스 키퍼/라이너 슈틀러 조였으며, 경기는 6-2, 4-6, 3-6, 7-6, 6-4의 풀 세트 접전 끝에 승리했다. 남자 단식에서도 4강까지 진출하여 3위 결정전에서 미국의 테일러 덴트를 6-4, 2-6, 16-14로 꺾고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로써 곤살레스는 마수와 함께 칠레의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곤살레스는 두 대회 연속으로 남자 단식 메달을 획득했다. 12번 시드를 받은 그는 결승까지 진출하여 금메달을 놓고 라파엘 나달과 맞붙었지만 3-6, 6-7(2–7), 3-6으로 패했다.
4. 1. 2004 아테네 올림픽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칠레 대표로 선출되어 니콜라스 마수와 조를 이룬 남자 복식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결승 상대는 독일의 니콜라스 키퍼/라이너 슈틀러 조였으며, 경기는 6-2, 4-6, 3-6, 7-6, 6-4의 풀 세트 접전 끝에 승리했다. 남자 단식에서도 4강까지 진출하여 3위 결정전에서 미국의 테일러 덴트를 6-4, 2-6, 16-14로 꺾고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로써 곤살레스는 마수와 함께 칠레의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2004년에는 23위로 시즌을 마감했다.4. 2. 2008 베이징 올림픽
2008년 호주 오픈 3회전에서 탈락하면서 세계 랭킹이 크게 하락했지만, 두 번의 대회에서 우승했다. 프랑스 오픈에서 5년 만에 두 번째 8강에 진출했고, 로저 페더러에게 6-2, 2-6, 3-6, 4-6으로 패했다. 8월의 베이징 올림픽에서 곤살레스는 두 대회 연속으로 남자 단식 메달을 획득했다. 12번 시드를 받은 그는 결승까지 진출하여 금메달을 놓고 라파엘 나달과 맞붙었지만 3-6, 6-7(2–7), 3-6으로 패했다.
5. 플레이 스타일
페르난도 곤살레스는 베이스라인 부근에서 플레이하는 스트로커이다.[13] 특히 그의 강력한 포핸드가 주목할 만하다.[13] 강한 근력으로 몸의 날카로운 회전에 팔이 따라가게 하여 큰 스윙으로 포핸드로 매우 위력적인 볼을 칠 수 있다.[13] 라파엘 나달에 비해 높은 타점에 강하다고 할 수 있다.[13]
6. 개인 생활
페르난도 곤살레스는 산티아고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페르난도 곤살레스 라미레스는 산티아고에 있는 몰리나 제분소의 매니저이고, 그의 어머니 파트리시아 치우파르디는 이탈리아계 혈통의 주부이다. 그는 누나 파트리시아와 여동생 제시카가 있다. 그는 Colegio de La Salle에서 초등학교를, Colegio Terra Nova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2017년부터 그는 은퇴한 아르헨티나 필드하키 선수 루시아나 아이마르와 교제해 왔으며, 슬하에 두 자녀를 두고 있다. 2022년 7월, 곤살레스는 가족과 함께 마이애미로 이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7. ATP 투어 결승 진출 결과
페르난도 곤살레스는 그랜드 슬램에서 1회 준우승, 올림픽에서 1회 준우승, ATP 투어 마스터스 1000에서 2회 준우승, ATP 투어 500 시리즈에서 1회 준우승, ATP 투어 250 시리즈에서 11회 우승과 6회 준우승을 기록했다.
서페이스별로는 하드 코트에서 2승 6패, 클레이 코트에서 8승 3패, 잔디 코트에서 0승 0패, 카펫 코트에서 1승 2패를 기록했다.
결과 | No. | 결승 날짜 | 대회 | 서페이스 | 상대 선수 | 스코어 |
---|---|---|---|---|---|---|
우승 | 1. | 2000년 5월 7일 | 올랜도 | 클레이 | 니콜라스 매수 | 6–2, 6–3 |
우승 | 2. | 2002년 2월 17일 | 비냐 델 마르 | 클레이 | 니콜라스 라펜티 | 6–3, 6–7(5–7), 7–6(7–4) |
우승 | 3. | 2002년 9월 29일 | 팔레르모 | 클레이 | 호세 아카수소 | 5–7, 6–3, 6–1 |
준우승 | 1. | 2002년 10월 27일 | 바젤 | 카펫 (실내) | 다비드 날반디안 | 4–6, 3–6, 2–6 |
준우승 | 2. | 2003년 8월 3일 | 워싱턴 D.C. | 하드 | 팀 헨먼 | 3–6, 4–6 |
준우승 | 3. | 2003년 10월 5일 | 메스 | 하드 (실내) | 아르노 클레망 | 3–6, 6–1, 3–6 |
우승 | 4. | 2004년 2월 15일 | 비냐 델 마르 | 클레이 | 구스타보 쿠에르텐 | 7–5, 6–4 |
준우승 | 4. | 2004년 7월 18일 | 아메르스포르트 | 클레이 | 마르틴 베르케르크 | 6–7(5–7), 6–4, 4–6 |
우승 | 5. | 2005년 1월 16일 | 오클랜드 | 하드 | 올리비에 로쿠스 | 6–4, 6–2 |
준우승 | 5. | 2005년 2월 6일 | 비냐 델 마르 | 클레이 | 가스톤 가우디오 | 3–6, 4–6 |
우승 | 6. | 2005년 7월 24일 | 아메르스포르트 | 클레이 | 아구스틴 칼레리 | 7–5, 6–3 |
우승 | 7. | 2005년 10월 30일 | 바젤 | 카펫 (실내) | 마르코스 바그다티스 | 6–7(10–12), 6–3, 7–5, 6–4 |
준우승 | 6. | 2006년 10월 15일 | 빈 | 하드 (실내) | 이반 류비치치 | 3–6, 4–6, 5–7 |
준우승 | 7. | 2006년 10월 22일 | 마드리드 | 하드 (실내) | 로저 페더러 | 5–7, 1–6, 0–6 |
준우승 | 8. | 2006년 10월 29일 | 바젤 | 카펫 (실내) | 로저 페더러 | 3–6, 2–6, 6–7(3–7) |
준우승 | 9. | 2007년 1월 28일 | 호주 오픈 | 하드 | 로저 페더러 | 6–7(2–7), 4–6, 4–6 |
준우승 | 10. | 2007년 5월 13일 | 로마 | 클레이 | 라파엘 나달 | 2–6, 2–6 |
우승 | 8. | 2007년 9월 16일 | 베이징 | 하드 | 토미 로브레도 | 6–1, 3–6, 6–1 |
우승 | 9. | 2008년 2월 3일 | 비냐 델 마르 | 클레이 | 후안 모나코 | 부전승 |
우승 | 10. | 2008년 5월 4일 | 뮌헨 | 클레이 | 시모네 볼렐리 | 7–6(7–4), 6–7(4–7), 6–3 |
준우승 | 11. | 2008년 8월 17일 | 베이징 올림픽 | 하드 | 라파엘 나달 | 3–6, 6–7(2–7), 3–6 |
우승 | 11. | 2009년 2월 8일 | 비냐 델 마르 | 클레이 | 호세 아카수소 | 6–1, 6–3 |
7. 1. 단식: 22회 (11승 11패)
페르난도 곤살레스는 그랜드 슬램에서 1회 준우승, 올림픽에서 1회 준우승, ATP 투어 마스터스 1000에서 2회 준우승, ATP 투어 500 시리즈에서 1회 준우승, ATP 투어 250 시리즈에서 11회 우승과 6회 준우승을 기록했다.서페이스별로는 하드 코트에서 2승 6패, 클레이 코트에서 8승 3패, 잔디 코트에서 0승 0패, 카펫 코트에서 1승 2패를 기록했다.
결과 | No. | 결승 날짜 | 대회 | 서페이스 | 상대 선수 | 스코어 |
---|---|---|---|---|---|---|
우승 | 1. | 2000년 5월 7일 | 올랜도 | 클레이 | 니콜라스 매수 | 6–2, 6–3 |
우승 | 2. | 2002년 2월 17일 | 비냐 델 마르 | 클레이 | 니콜라스 라펜티 | 6–3, 6–7(5–7), 7–6(7–4) |
우승 | 3. | 2002년 9월 29일 | 팔레르모 | 클레이 | 호세 아카수소 | 5–7, 6–3, 6–1 |
준우승 | 1. | 2002년 10월 27일 | 바젤 | 카펫 (실내) | 다비드 날반디안 | 4–6, 3–6, 2–6 |
준우승 | 2. | 2003년 8월 3일 | 워싱턴 D.C. | 하드 | 팀 헨먼 | 3–6, 4–6 |
준우승 | 3. | 2003년 10월 5일 | 메스 | 하드 (실내) | 아르노 클레망 | 3–6, 6–1, 3–6 |
우승 | 4. | 2004년 2월 15일 | 비냐 델 마르 | 클레이 | 구스타보 쿠에르텐 | 7–5, 6–4 |
준우승 | 4. | 2004년 7월 18일 | 아메르스포르트 | 클레이 | 마르틴 베르케르크 | 6–7(5–7), 6–4, 4–6 |
우승 | 5. | 2005년 1월 16일 | 오클랜드 | 하드 | 올리비에 로쿠스 | 6–4, 6–2 |
준우승 | 5. | 2005년 2월 6일 | 비냐 델 마르 | 클레이 | 가스톤 가우디오 | 3–6, 4–6 |
우승 | 6. | 2005년 7월 24일 | 아메르스포르트 | 클레이 | 아구스틴 칼레리 | 7–5, 6–3 |
우승 | 7. | 2005년 10월 30일 | 바젤 | 카펫 (실내) | 마르코스 바그다티스 | 6–7(10–12), 6–3, 7–5, 6–4 |
준우승 | 6. | 2006년 10월 15일 | 빈 | 하드 (실내) | 이반 류비치치 | 3–6, 4–6, 5–7 |
준우승 | 7. | 2006년 10월 22일 | 마드리드 | 하드 (실내) | 로저 페더러 | 5–7, 1–6, 0–6 |
준우승 | 8. | 2006년 10월 29일 | 바젤 | 카펫 (실내) | 로저 페더러 | 3–6, 2–6, 6–7(3–7) |
준우승 | 9. | 2007년 1월 28일 | 호주 오픈 | 하드 | 로저 페더러 | 6–7(2–7), 4–6, 4–6 |
준우승 | 10. | 2007년 5월 13일 | 로마 | 클레이 | 라파엘 나달 | 2–6, 2–6 |
우승 | 8. | 2007년 9월 16일 | 베이징 | 하드 | 토미 로브레도 | 6–1, 3–6, 6–1 |
우승 | 9. | 2008년 2월 3일 | 비냐 델 마르 | 클레이 | 후안 모나코 | 부전승 |
우승 | 10. | 2008년 5월 4일 | 뮌헨 | 클레이 | 시모네 볼렐리 | 7–6(7–4), 6–7(4–7), 6–3 |
준우승 | 11. | 2008년 8월 17일 | 베이징 올림픽 | 하드 | 라파엘 나달 | 3–6, 6–7(2–7), 3–6 |
우승 | 11. | 2009년 2월 8일 | 비냐 델 마르 | 클레이 | 호세 아카수소 | 6–1, 6–3 |
7. 1. 1. 대회 등급
7. 1. 2. 서페이스별
(내용 없음)7. 2. 복식: 4회 (3승 1패)
라이너 슈틀러마리아노 후드
마르틴 가르시아
웨슬리 무디